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9.13 사건 (문단 편집) === 광저우로 도망치려는 린뱌오 === 571 공정이 실패로 끝나자 린뱌오와 린리궈, 예췬은 광저우로 달아나기로 하였다. 린뱌오는 우선 광저우에서 황용셩, 우파셴, 리쭤펑, 치우후이쭤 등과 모의하여 광저우에서 정부를 수립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후일 [[중국공산당]]의 기소장에 적혀 있다.[* 로더릭 맥파커를 비롯한 학자들도 이를 수용했다.] 린뱌오는 자신이 머물고 있던 북대하의 요양원에 딸 린리헝과 린리헝의 약혼자 등을 불러모았다.[* 린리헝은 571 공정과 아무런 연관도 없었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예췬은 딸 린리헝에게 "아버지가 일주일 후에 다롄에 갔다가 국경절에는 베이징으로 돌아올 것이다."라고 발언하며 광저우로 달아나려는 계획을 은폐하고자 했다. 9월 12일 예췬은 난데없이 딸 린리헝의 결혼식을 올리겠다면서 비서와 사무원에게 다과와 술을 마련하라고 지시하며 연회를 준비시켰다. 그리고 베이징에 있던 우파셴에게 전화하여 축전을 쳐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린리헝이 난데없이 결혼식을 올리는 것에 대해 반대하여 약혼식으로 바꾸어 거행했다. 이것 역시 광저우로 달아나려는 계획을 은폐하려는 연막작전으로 해석된다. 린리헝은 부모의 수상한 행동에 불안해하며 9월 8일에 8341부대에 연락해 유사시에 린뱌오를 보호할 수 있도록 요양소를 지켜 달라고 요청하였다. 하지만 예췬이 린리헝이 사랑에 빠져 제정신이 아니라는 소문을 퍼뜨렸기 때문에 8341부대는 린리헝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요양소에 개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9월 12일, 린리궈는 광저우로 달아나기 위해 군용 [[호커 시들리 트라이던트]] 1E 비행기[* [[영국]]제 3발 제트기로 12년 후 [[중공 여객기 불시착 사건]]의 주인공이 된다. 춘천에 불시착한 건 2E 모델이다. 이래저래 중국과 엮인 기종인 셈.] 256호를 준비시키고 공군 사령부 처장 유패풍과 함께 북대하 산해관 공항으로 향했다. 린리궈 일행은 오후 9시에 린리헝의 약혼식장에 나타났다. 린리궈는 누나에게 허겁지겁 꽃다발을 건네주고는 어머니 예췬을 데리고 약혼식장을 빠져나와 린뱌오의 집무실로 향했다. 어머니와 남동생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린리헝은 린리궈의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깨달았다. 린리헝은 사무원을 보내 예췬과 린리궈의 대화 내용을 엿듣게 했는데 이들은 9월 13일 아침 6시에 남쪽으로 떠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를 듣고 놀란 린리헝은 린뱌오의 경호참모 오문호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오문호는 이를 믿지 않고 린뱌오는 다롄으로 가기로 계획이 되어 있다고 대답했다. 오문호는 다시 린뱌오를 찾아가서 내일 다롄으로 가는 것이 맞냐고 물었고 예췬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경호부대를 출동시키겠다고 했다. 하지만 예췬은 엄숙하게 경호부대를 출동시키지 말라고 요구했다. 역시 이상함을 느낀 오문호는 이를 린리헝에게 전달했다. 린리헝은 이를 린뱌오를 경호하던 중앙경위국 8341부대 대기소에 통보하기로 결심하여 오후 9시 50분 8341부대 사령관 장야오츠에게 린리궈와 예췬이 린뱌오를 납치하려 한다고 보고했다.[* 이는 린리헝과 예췬의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던 것도 한몫했다는 추측이 있다. 예췬은 린리헝을 학대했고 린리헝은 예췬이 자신의 생모가 아니라고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러 자살을 기도하기까지 했지만 예췬은 딸이 자살하려 했다는 소식에 죽게 내버려두라고 말할 정도로 딸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전에도 린리헝은 린뱌오가 [[주더]]처럼 정치에서 은퇴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주장하면서 쿠데타나 망명을 기도하려는 린리궈의 주장에 반대해 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